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구모 주이치 (문단 편집) === 단평들 === >나구모 중장은 용맹하고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또한 그야말로 오랜 세월에 걸친 바닷바람에 단련된 제독이라는 느낌이었다. 반면 더없이 애정이 세심해서 부하에 대한 배려가 깊었다. > >南雲中将は精悍で激しい性格の持主であり、またいかにも長年月にわたる潮風に鍛え上げられた提督という感じであった。反面極めて情愛がこまかく部下に対する思いやりが深かった。 >---- >[[겐다 미노루]] 대좌 >[[진주만 공습|진주만 공격]] 성공의 공적을 [[야마모토 이소로쿠]]에게 돌리고, [[미드웨이 해전]]의 책임을 나구모에게 돌리는 것은 모순이다. > >真珠湾攻撃成功の功績を山本五十六等に帰し、ミッドウェー海戦敗戦の責任を南雲に帰すのは矛盾である。 >---- >[[오쿠미야 마사타케]] 중좌 >대좌 시절부터 제1수뢰전대사령관 시절까지는, 말하자면 만점을 줄 만한 인물이었지만, 개전 후는 발랄한 모습 등 옛날의 투지를 잃어, 뭐라 해도 시원찮은 장관이었다. 이미 노쇠한 게 아닌가 느낄 정도였다. 작전을 지휘하는 태도도 퇴영적[* '진취적'의 [[반의어]]. 나서지 않고 뒤로 물러나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뜻.]이었다. > >大佐時代から第1水雷戦隊司令官時代までは、いわば満点を与えられるほどの人物であったが、開戦後は溌剌颯爽たりし昔日の闘志が失われ、何としても冴えない長官であった。早くも耄碌したのではなかろうかと感ずる程であった。作戦を指揮する態度も退嬰的であった。 >---- >[[후치다 미쓰오]] 대좌 >그는 독창적이지 않고, 융통성이 없으며,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볼 줄 모르고,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쉽게 무너지는 타입이었다. >---- >앤드류 램버트 해군 역사학 교수, [[내셔널 지오그래픽]] "전쟁의 대가들" 중에서[* 이 평가는 사실 비단 나구모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해군 제독들은 미국의 제독들에 비해 소극적인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당시 전체주의가 판을 치고 군대가 나라를 장악한 일본 제국 자체의 분위기는 제독들이 융통성 있는 사고를 할 수 없게 만드는 분위기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